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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카테마] 취중진담
    * * * * 2017. 2. 19. 23:24








     그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주량이 센 편이 아니었음에도 오기를 부려 마셨다. 옆에 앉은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꽤 달아오른 얼굴이었다. 슬슬 그만 할까. 그래. 더는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안주를 주워먹으면서도 서로 한참 말이 없었다. 야. 먼저 입을 뗀 건 그녀였다. 

     왜. 

     네가 첫 데이트 때 그랬잖아.

     음?

     나랑 이렇게 밥을 먹게 될 줄은 몰랐다고.

     아아. 그랬었지.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기분이 묘했는데.

     그녀는 비워진 술병들을 모아 한자리에 정리했다. 습관같은 것이었다. 

     이젠 대충 알겠더라. 

    뭘.

     나도 널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는 뜻이지.

     이렇게. 그녀가 말을 되풀이하며 슬쩍 웃었다. 귀가 화끈거렸다. 

     놀리는 거야?

     너도 그렇지 않나?

     우리의 처음을 생각해 봐. 허. 곧바로 그가 귀찮은 기색을 보였다. 마냥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에게 몸을 가까이 붙였다. 그 때의 날 떠올리면 어때? 기분이 이상한데. 좀 더 협조적으로 굴어봐. 눈동자를 한 번 굴리던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그럼 지금 너를 열 네살이라고 여길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봐.

     테마리.

     그가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잠깐 당황했는지 대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마치 정말 어린 시절의 그녀와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는 고심하다 한 마디를 꺼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게 뭐야.

     그녀가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반은 억지였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얻어터질 각오를 하고서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잠깐 눈빛이 사나웠지만 잠자코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면 그래. 후에 네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났을 적 말인데.

     달라졌음에 감사해. 

     당연히 그랬어야만 했어.

     거기에도 얼마나 휘둘렸어야 했는 지. 그녀가 그의 팔뚝에 기대었다. 이내 떨어졌다. 아까와는 다른 얼굴이었다. 

     나도 할래. 

     뭘. 

     넌 이제 열 두살 귀찮음에 쩔어있던 애늙은이야.

     ......이미 할 말 다 한 것 같은데.

     그녀가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쌌다. 꽤 귀여웠었지. 못생겼지만. 쪽. 두 입술 맞닿았다. 

     이봐, 이런 장난은......

     고마워.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있게끔 만들어줘서.

     그가 다시금 얼굴을 붉혔다. 그녀가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네 곁에 있을 거야. 계속. 

     이번엔 그가 굳어졌다. 순간 스쳐지나간 사람이 몇 있었다. 너. 엉터리네. 영락없이 나약한 소년과 같았다. 어쩌면 앞으로도 견뎌야 할 것이 많은.

     그런 걸 미리 말해주는 게 어디있어.

     조금 냉정했나.

     아니. 참 너답다.

     그녀 어깨에 그가 얼굴을 묻었다. 술 냄새 섞인 숨결이었지만 썩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의 등을 도닥였다. 

     이 감정을 깨닫기까지. 그 후에도.

     나는 그럴 거야. 술김이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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