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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코소노] 용서
    * * * * 2019. 7. 30. 23:31













     가만 보면 비를 부르는 사람이야. 마코토 씨.”

     턱을 괸 소노코가 시선을 유리 너머로 옮겼다. 밖은 어두워져서 콘크리트 바닥이 새카맣게 보일 정도였다. 빗줄기가 아까보다 굵어졌다. 머그잔은 식은 지 오래.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로 입술을 축였다.

     


     영화관 밖으로 나오니 구름의 빛이 달라진 상태였다. 영화 보는 동안 팝콘을 먹어서 당장 배고프진 않았다. 금방 쏟아질 것 같은데. 그럼 근처 카페에서 상황을 볼까요. 소노코가 미리 생각했던 곳은 거리가 꽤 있었다. 그녀 얼굴에 물방울이 두어 번 떨어졌고 두 사람은 서둘러 눈에 들어오는 카페로 향했다.

     테이블은 대부분 차있었다. 통유리로 된 벽을 두고 나란히 앉는 자리에 겨우 앉았다. 비슷한 생각으로 들어온 건지 손님이 많았다. 쿄고쿠가 주문을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라앉은 공기만큼 소노코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도쿄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체인 커피숍. 어느 지점이든 볼법한, 딱딱하게 통일된 인테리어 가구. 촌스러운 내부 색감을 살피며 눈을 굴렸다. 쿄고쿠와의 데이트라면 좀 더 분위기 있는 장소를 찾고 싶었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쿄고쿠가 손을 살짝 흔들었다. 밝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내색하지 말자. 그와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니까.

     


     쿄고쿠가 가져온 트레이에는 따뜻한 커피 두 잔이 있었다. 제일 빠른 걸로 고르다보니. 이미 이십 분 가량 지나서 의미는 없었지만 소노코는 두 손으로 컵을 감쌌다. 차가워진 손바닥에 열이 금세 번졌다.

     “소노코 씨, 잠시.”

     쿄고쿠는 재킷을 벗어 소노코의 어깨에 얹은 뒤 그녀 옆에 앉았다. 밖으로부터 은근히 전해지는 한기를 그도 느낀 모양이었다.

     “역시 안쪽이 좋았을 텐데 말이죠.”

     “나는 괜찮아. 마코토 씨는?”

     “저도 괜찮습니다. 추위를 잘 안타는 몸이라.”

     더운 건 역시 좀 싫지만요. 문득 쿄고쿠의 고향이 시즈오카임을 떠올랐다. 이즈. 그와의 인연이 시작된 여름. 소노코는 씩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즈에서 마코토 씨와 만났을 때도.”

     “?”

     “그 때도 비가 왔어.”

     “이틑날 저녁이었던가요.”

     쿄고쿠는 기억하고 있었다. 소노코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것도 생각나요? 나한테 장우산을 줬던 거.”

     “. 기억하고 있습니다.”

     소노코의 표정에 쿄고쿠의 눈빛도 부드러워졌다. 아까의 불만은 잊은 듯이 그녀는 재잘재잘 떠들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엄청난 기세로 우산만 놓고 문을 닫아버렸잖아요.”

     “그랬던가요. 제가.”

     쿄고쿠는 애매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는 표현이 드문 사람이었다. 그래서 작은 반응에도 소노코는 신이 났다.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고요. 그래서.”

     사실 그런 인사를 건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쿄고쿠는 무섭다 못해 음침하고 수상해보였으니까.

     “저도 정신이 없었거든요. 마음이 있는 상대에게 뭔가를 건넨다는 게.”

     이럴 땐 또 아무렇지 않게 부끄러운 말을 잘 하는 사람이다. 소노코는 아메리카노를 조심조심 들이켰다. 쿄고쿠의 잔은 이미 반 이상 비어있었다.

     “내가.”

     “.”

     “내가 좀 더 빨리 알아챘다면 좋았을 텐데.”

     “?”

     컵 가장자리에 묻은 립스틱을 엄지로 쓸었다. 상상했다. 큰소리를 낸 미닫이문을 소노코가 다시 연다. 쿄고쿠는 어떤 얼굴을 보이고 있을까. 지금처럼 뺨을 붉게 물들이려나. 질색하던 까만 팔을 잡는다. 그녀가 입을 뗀다. 수많은 말을 떠올리고 담아도 지금 이 마음을 전할 순 없을 거다.

     “소노코 씨.”

     소노코는 두 눈을 깜빡였다. 쿄코쿠는 불편한 자세로 그녀에게 팔을 붙잡혔음에도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빠져나가려는 손을 그가 다시 잡았다.

     “소노코 씨는 신기해요.”

     “어떤?”

     커피와는 비교 못할 뜨거움에 사로잡힌 것만 같았다. 애써 손가락을 장난스럽게 얽었다.

     “제대로 말 한 마디 붙이 지 못한 건, 저잖아요.”

     “후후. 알긴 하구나.”

     쿄고쿠는 그녀 엄지에 묻은 립스틱의 흔적을 만지작거렸다. 붉은 자국은 그의 손에도 번졌다.

     “. 다른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상대를 올곧게 관철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내심 알아주기를. 나를 봐주기를.”

     소노코는 쿄고쿠를 똑바로 올려봤다. 예상대로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다.

     “안일하게 생각했던 저를 용서하세요.”

     쿄고쿠는 다른 상황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소노코도 알고 있었다. 생각도 못한 대상에게 위협을 당했던 철도 근방 숲. 미처 마르지 않은 풀밭에 뒹굴며 그녀는 비명을 내질렀다. 번쩍이는 칼. 수직으로 내리꽂은 칼날을 막아내던 그.

     “제가 조금 더 용기를 냈더라면. 당신이 그런 일을 겪을 필요도 없었겠죠.”

     “허어.”

     허탈한 소리가 절로 나왔다. 쿄고쿠가 죄책감을 가지는 지점이 이해가 가긴 했다. 그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소노코 곁을 맴돌았다. 겁에 질려있던 그녀 입장에선 충분히 가질만한 경계심이었다.

     “내가 단순하게 생각했나 봐요. 너무 무거워요.”

     “갑자기 진지해지긴 했네요. 죄송합니다.”

     계속 쿄고쿠를 응시했다. 새카만 손을 제 입가에 끌어와 입을 맞췄다. 그가 몸을 떨었다. 쿄고쿠의 손등에도 입술 자국이 희미하게 새겨졌다.

     “결국 서로 미안한 점이 하나씩 있네. 뭔가 우습지 않아요?”

     “그런가요. 경우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둘 다 어리숙했으니까. 서로 용서하는 걸로 해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소노코 씨가 제게 잘못한 건 정말 하나도 없으니까요.”

     쿄고쿠는 재차 강조했다.

     “네네. 나는 그냥 개인적인 아쉬움에 가깝죠.”

     소노코가 그의 손을 다시금 감싸 쥐었다. 곧이어 더 큰 힘이 실렸다. 완전히 덮인 손. 손바닥에 감긴 열이 온몸으로 퍼졌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재킷을 두르고 있는 것보다 더 따뜻했다.



     바깥에서 비가 그칠 기미는 보이질 않았다.

     “이제 생각났는데 카루이자와에서도 비가 왔었어요.”

     “그러고 보니.”
     “엉터리 경부 때문에 마코토 씨가 범인으로 몰렸었죠.”

     소노코는 단번에 미간을 좁혔다.

     “그래도 모리 탐정님이 금방 사건을 해결하셨으니.”

     그리고 소노코 씨의 열렬한 증명을 들을 수 있었잖아요. 나쁘진 않았습니다. 쿄고쿠의 서슴없는 말에 그녀가 홍조를 띠며 툴툴거렸다.

     “가만 보면 비를 부르는 사람이야. 마코토 씨.”

     두 사람은 계속 손을 잡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것도 용서하세요.”

     쿄고쿠의 어조는 가벼웠다.

     “저기, 마코토 씨.”

     “네 말씀하세요.”

     “나도 용서를 하나 더 바라야겠어.”

     “뭔가요?”

     “사실 예비용 우산이 있거든요. 조금 작아서 같이 쓸 만한지는 모르겠지만.”

     진즉 말했어야했는데. 이렇게 붙어 있는 게 좋아서요. 쿄고쿠에게 떨어져 가방을 열려는데 그가 제지하였다. 소노코 씨. 그녀의 손을 그가 잡아당겼다

     용서할 테니. 쿄고쿠가 주저하며 웅얼거렸다.

     “조금만 더 이렇게 있어도 되겠습니까?”

     “.......”

     그런 귀여운 얼굴로 물어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소노코는 쿄고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비가 내리긴 하는 걸까. 아까의 스산한 기운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전신이 이렇게 후끈거리는데. 유리 너머의 풍경에 이질감을 느끼며 소노코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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