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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소노] Absinthe_웹 선공개* * * * 2019. 10. 1. 22:05
*쿄고쿠 마코토가 검은조직의 일원이라는 평행세계 기반입니다.
*소재상 내용 중 범죄 묘사가 있습니다. 쿄고쿠의 일방적인 집착. 퇴폐쪽보단 많이 구질구질.
*쿄고쿠와 소노코 사이의 강제성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 합의 하에 관계가 이뤄집니다.
*2020년 2월 <Here your Love! 헤테로통합판매전>에 판매될 예정.
*아래 내용은 원고의 일부입니다. 추후 수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Absinthe_
여자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른한 눈빛이지만 상대를 꿰뚫는 것만 같다. 소노코는 그림을 전체적으로 살폈다. 아름다운 곡선의 연속인 구도 속에 여인은 어딘가 편히 기대어 앉아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 줄기 꽃이 둥근 형태로 장식되었다. 섬세한 옷의 주름을 따라가면 곧게 뻗은 다리와 하얗게 드러난 맨발이 보였다. 선은 다시 베일의 형상으로 여인을 감싸듯 이어져 시선을 위로 이끌었다. 어느새 벌어진 입가를 황급히 가렸다.
무하 박물관은 프라하 체류 중 소노코가 한 번쯤 꼭 오고 싶은 곳이었다. 신이치와 란을 천문 시계탑에 두고 와버린 건 단순히 두 사람의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작은 규모의 박물관이여도 연극 포스터나 연작 등 구성 배치가 알차서 즐겁게 관람했다. 한 시간 정도 관내를 돈 뒤 그녀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으로 돌아와 한참 바라보았다.
곧 신이치와 란과 만나기로 했다. 소노코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러섰다. 그대로 거구의 백인과 세게 부딪쳤다. 알아듣지 못할 말이 들렸다. 사과의 뜻인 것 같았다. 하이힐 굽이 미끄러져 휘청거렸다. 필사적으로 중심을 잡으려는데 누군가 그녀를 감쌌다.
“아, 감사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모국어가 나왔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
“괜찮으십니까.”
소노코의 눈동자가 커졌다.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팔뚝에 올라온 손은 까맣고 투박하며 컸다. 그녀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숨이 멎을 뻔 했다.
“마코토 씨.”
“……오랜만입니다. 소노코 씨.”
쿄고쿠는 한결같은 미소로 소노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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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년 전의 일이었다.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연인이 되어 관계를 정립하고, 다른 이들이 그렇듯 사소한 계기서부터 멀어져 이별에 도달한다.
신이치와 란에게는 둘이서 스타보브스케 극장 공연을 보라고 연락을 넣었다. 구시가 광장 인근 카페에서 자리를 잡았다. 손님이 많은 것 치곤 주문한 커피가 빠르게 나왔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쿄고쿠는 소노코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에겐 제법 버거운 일이었다.
“쿄고쿠 씨는 여기 어쩐 일로.”
“이곳에 있는 경기 일정 때문입니다.”
“혹시 그 시합.”
쿄고쿠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소노코는 아직 잔에 손도 대지 못했다. 네. 맞습니다. 모리 란 씨가 초대 선수로 참석하는. 란에게는 아무런 말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굳이 올 필요 없다고 한 거였구나. 상냥하고 어설픈 배려에 소노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쿄고쿠가 컵을 내려놓았다.
“소노코 씨는 관람하러 오시는 건가요. 아니면.”
그녀는 생략된 뒷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대로 회피할 것인가. 아니면. 이는 명백한 도발이다. 깊은 푸른빛의 눈동자가 소노코를 주시한다. 그는 여유 있게 대답을 기다렸다.
“……란의 원정 시합은 드무니까. 당연히.”
“그렇습니까.”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를 빼곤 소식을 피해왔다. 규모가 큰 대회가 아니라 방심했던 거다. 쿄고쿠는 순순히 끄덕였다. 그는 변함없는 태도로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소노코도 팔을 뻗어 유리잔을 집었다.
“그렇다면 제 경기도 봐주시지 않겠습니까.”
물기가 흥건한 컵 가장자리에 입술을 짧게 붙였다가 뗐다. 헤어진 사이라는 걸 망각하자면 설렐 법도 하다. 하지만 이젠 다 지나간 일이다.
“그래.”
괜한 오기였다. 쿄고쿠도 알고 있었다. 그는 부드러운 웃음을 보였다. 거짓을 고하지 않음으로서 늘 그녀를 속여 왔다. 시계탑의 종이 울렸다. 이만 가봐야겠어. 네. 시합장에서 뵙겠습니다. 가방을 매던 그녀가 멈칫했다. 필요이상으로 힘주어 가방끈을 쥔 소노코에게 쿄고쿠는 연락처를 억지로 떠넘겼다.
그녀가 도망치듯 떠나고서 그는 맞은편의 빈 의자를 뚫어지게 보고만 있었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 느긋하게 몸을 일으키며 쿄고쿠는 화면을 확인하였다. 검은 배경에 흰색의 작은 발신자명이 찍혀있다. Vermouth. 전화를 걸어온 여자가 짧게 웃는다. 휴가는 즐거워?
『압생트(Absinthe).』
“……접선 일자라면 멀었습니다만.”
『무슨 일 있었나? 왜 이렇게 날이 섰을까.』
그녀는 기분 나쁜 냉소를 흘렸다. 그가 미간을 좁혔다.
“용건이 뭡니까.”
『……쿠도 신이치가 프라하에 있다는 정보를 받았거든.』
아아. 그래서. 쿄고쿠는 자신도 모르게 납득을 한다. 잠깐의 침묵을 놓치지 않고 베르무트가 물었다. 뭔가 짚이는 거라도? 아뇨. 없습니다.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 공교롭게도 거기 스즈키 가의 차녀도 함께 라더군. 쿠도 신이치가 수상한 짓을 보인다면.』
“알겠습니다.”
종료 버튼을 눌렀다. 명령이 없었어도 저지른 상황. 그는 광장을 유유히 벗어났다.
직접 임무를 나서는 건 오랜만이었다. 오래전부터 쿄고쿠는 검은 조직의 첩보부로서 다른 조직원을 보조하거나 뒷수습을 주된 일로 삼았다. 일반인들과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까지 멀쩡히 다닐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러하였다. 벽창호 같은 기질이 있었지만 적당한 사회성을 유지했으며, 취미로 시작한 동아리 활동도 주변의 인정을 받았다. 이는 해외 유학이라는 그럴듯한 명목을 만들어주었다. 압생트(Absinthe)라는 암호명을 받은 시기도 그쯤이었다.
스즈키 소노코는 그저 대상이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세계 규모의 재벌 스즈키 가와의 연줄이 있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이즈의 일도 조직이 꾸몄다. 연쇄 살인마가 그녀를 위협하면 쿄고쿠가 나서서 지킨다. 미치와키 타다히코는 조직에서 고용한 범죄자였다. 소노코에게 생각보다 큰 후유증을 남긴 것이 마음에 안 들어 그가 다시 처리해버렸지만.
그녀와의 연애가 즐거웠음을 쿄고쿠는 솔직히 인정한다. 타지 생활에 익숙해져야했고, 선수 활동과 조직의 지시를 수행하는 중에도 연락을 꼬박꼬박 주고받았다. 가끔은 암살 현장을 정리하며 통화했다. 동료들이 질색할 정도로 표정이 풀어졌다. 자신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소노코는 늘 새로움을 안겨준다. 그건 당연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다음을 원하게 된다. 이상한 게 아니다. 지나친 감정 이입이라면 그럴 만하다. 그녀였으니까.
그는 감히 가정을 한다. 이즈에서의 시작이 사실 정말 운명이었다면. 자신이 처음부터 진심으로 스즈키 소노코를 사랑했다면. 이 헌신이 기만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면. 정해져 있는 답인데도 미련을 놓지 못한다. 그 뒤틀린 감정은 쿄고쿠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매스컴에 노출된 그녀의 모습부터 온갖 가십, SNS 계정을 통한 사사로운 일정까지 전부 모아오고 있었다. 근 5년 동안. 그의 이번 임무지 프라하에 소노코가 어떤 용무로 찾아왔는지 비자 기록을 추적해 알아냈다. 그녀에 대해선 진즉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같은 나라에 있게 되었다는 걸로도 몸이 달떴다. 우연을 가장해 소노코에게 또 접근했다. 이번은. 이번만큼은 조직보다 쿄고쿠의 의지가 앞선 것이었다. 오싹했다.
“나 마코토 씨를 만났어.”
소노코의 말에 란은 포크질을 그쳤다.
“소노코. 숨겨서 미안해.”
“괜찮아. 이해해.”
그것 때문에 반드시 챙겨봐야 할 공연도 포기한 거야? 도리어 신이치의 반응이 덤덤했다. 신이치. 란이 다그쳤다.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예상 못한 건 아니었잖아.”
프라하는 생각보다 좁은 도시야. 신이치는 심드렁한 낯으로 와인을 들이켰다. 한 대 때리고 싶었지만 란을 봐서 참기로 했다. 그래도 심술은 부려야 직성이 풀렸다.
“어느 점에서?”
“뭐?”
“꼭 나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어. 너일 가능성도.”
글쎄. 그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검은 조직 활동지로 직접 발 들인 이상 충분히 그럴 법 하다. 것보다 촉이 좋은 편인 소노코가 그 부분을 인지했단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신이치가 알고 있는 쿄고쿠 마코토는. 란이 접시를 밀어냈다.
“역시 경기장은 찾아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싫어. 달아나는 것 같잖아.”
달아나도 괜찮은 부분이야. 이건. 란이 부드럽게 타일렀지만 소노코가 고집을 부렸다. 스즈키 소노코는 그렇게 생각 안한대.
“그래서 어쩔 거야?”
“신이치 군 때문에 주변인인 내게 다가온 거라면.”
소노코는 수저를 내렸다.
“내게 집중하게끔 하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마코토 씨, 목적이 뭐든 분명 나와 가까워지려 할 테니.”
“소노코! 그게 무슨 소리야.”
란이 답지 않게 인상 썼다. 분위기는 망가졌다. 조명 빛이 유달리 아름다운 레스토랑 안에서 세 사람은 식사를 멈췄다. 좋아. 근데 너 밀당 못하잖아. 신이치가 대놓고 말했다. 마코토 씨는 매번 넘어왔잖아. 소노코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아. 그렇군. 그 인간, 여러모로 제정신이 아니었지.”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어째서 소노코가 위험한 짓을 해?”
란만이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 소노코는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직원에게 고갯짓으로 인사한 소노코는 제법 냉정한 얼굴이었다.
“란. 위험이라면 우리가 프라하에 도착할 때부터 감수해야했어.”
“그래도 다 같이 있는 거랑 개별로 활동하는 건 달라.”
“그럼 네 시합을 보러가도 좋다는 거네.”
그치? 나 혼자 떨어지지 않고 말이야. 능청스러운 대꾸에 란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신이치를 쳐다봐도 이미 두 손 든 상태였다.
“……내가 남자였다면 경기를 빌미로 쿄고쿠 씨에게 발차기를 수백 번 날렸을 텐데.”
“와! 나는 란이랑 사귀었을 텐데.”
“소노코가 쿄고쿠 씨를 만날 필요도 없었을까?”
“얘들이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는 거야.”
신이치가 질색하는 사이 점원이 아이스크림을 가져왔다. 농담을 끝으로 셋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날 계획을 점검했다. 란의 대회는 사흘 후였다. 후에 소노코는 전시를 마저 준비해야 했다. 무거운 이야길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란과 소노코를 객실로 배웅한 뒤 신이치도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발코니 창을 열고 두 걸음 정도 옮기자 액정 너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당신. 시차 따윈 생각도 안하는 거지? 어린 여자 아이였다. 신이치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때 하이바라는 이를 거부했다.
“어차피 안자고 있었잖아.”
“그 나라의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린 거야?”
그녀가 무미건조한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신이치는 본론만 말하기로 결정했다.
“쿄고쿠 마코토가 여기 있어.”
“……그쪽이 알아챘다고?”
“확신은 못하겠어. 소노코가 우연히 만났다고 했거든.”
“하필 그 둘이 말이지.”
어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하이바라는 소노코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정작 장본인이 전혀 모르고 있는. 그녀답지 않은 불필요한 감정소모다.
“그래서 이번에도 소노코에게 맡길까 해.”
그 때 쿄고쿠와 직접 담판을 지었던 것도 소노코였다. 그녀는 신이치의 이야기를 듣고서 그 다음날 무작정 여권을 챙겨 미국으로 갔었다. 며칠이 지나 소노코가 귀국했단 소식에 란과 신이치는 스즈키 저택을 찾아갔다. 그녀는 지친 기색으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모두 끝났음을. 쿄고쿠는 그들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은 거야?”
“종종 멍청한 짓을 하지만 바보는 아니니까.”
“그렇다면야…….”
하이바라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이 이상 나설 수 없는 사람이다. 스스로 택한 것이다. 이봐, 하이바라. 그런 의미서 알아봐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프라하의 저녁 공기는 차갑다 못해 시리다. 해가 뜨기까지 이 한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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